책 소개
문명의 종말을 다룬 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그 어떤 종말소설과도 다른 주제, 바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 『스테이션 일레븐』. ‘지금 여기’에 대한 사랑 고백인 동시에 일종의 우화인 이 소설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을 생각하게 하고, 종말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마치 기적 같은 매일의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할리우드 배우 아서 리앤더가 《리어 왕》 공연 도중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질 무렵, '조지아 독감' 보균자를 실은 비행기 한 대가 미국에 착륙한다. 빠르고 치명적인 이 전염병은 원자폭탄처럼 터져 인류의 99.9퍼센트를 휩쓸어가고, 눈 깜빡할 사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끝이 난다.그로부터 20년 후, “생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문장을 마차에 새긴 악단이 광활한 북미 대륙을 떠돌며 셰익스피어 희곡을 공연하고 있다. 그중에는 《리어 왕》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커스틴도 있다. 아서가 죽던 모습 말고는 종말 전의 기억이 없는 그녀는 아서가 준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만화책을 애지중지 가지고 다닌다.그러던 중 ‘예언자’라고 불리는 청년이 지배하는 마을에 들어서게 된 악단은 배우 하나를 예언자의 네 번째 부인으로 달라는 요구를 거절해 쫓기는 신세가 되고, 항상 가던 길을 벗어나 예전에 공항이었고 지금은 ‘문명 박물관’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유랑악단과 문명 박물관, 어느 파파라치와 할리우드 배우와 그의 전처와 그녀가 그리는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제목의 그래픽노블 등 세상의 끝 전과 후 수십 년에 걸친 이야기들을 교차해 쌓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와 감동을 자아낸다.
작가 소개
저자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Emily St. John Mandel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홈스쿨링을 거쳐 토론토댄스시어터에서 무용수의 길을 걷던 중 춤이 아니라 글쓰기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데뷔작 『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밤』(2009)에 이어 프랑스 추리비평가협회상을 받은 두 번째 작품 『싱어스 건』(2010)과 세 번째 작품 『롤라 콰르텟』(2012)까지 호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맨델은 2014년 문명의 종말 이후를 독특한 시각으로 다룬 네 번째 소설 『스테이션 일레븐』을 발표한다. 출간 전부터 크노프 출판사에서 계약금으로 6억 원에 이르는 거금을 내놓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북미 대륙 전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전미도서상을 비롯한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타임》, 《가디언》 등 21개에 이르는 매체의 2014년, 2015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이제 영미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작가가 된 맨델은 가족과 고양이와 뉴욕에 살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책 속에서
“미란다, 아서가 어젯밤에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바다 위에 떠 있는 불빛이 흐릿해지더니 빛의 동그라미가 서로 겹쳐지며 한 줄로 늘어섰다. “정말 유감입니다. 이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전화했어요.”
“얼마 전에 만났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2주 전 토론토에서요.”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그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충격이죠, 정말……. 우린 열여덟 살 때부터 친구였어요. 나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요.”
“어쩌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실은, 음…… 불쾌하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실은 이런 게 아서가 원하던 죽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무대에서 죽었거든요. 〈리어 왕〉 4막 중간에, 급성 심장마비로요.”
“연기하다가 쓰러졌다고요?”
“네. 관객 중에 의사가 두 명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고 급히 무대로 뛰어 올라가서 아서를 구하려고 애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네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이 선언되었답니다.”
이렇게 끝이 날 수도 있구나. 통화가 끝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시시한 결말이라니. 그러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한때 함께 늙어갈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머나먼 타국에서 전화 한 통으로 알게 될 수도 있는 거였다.
근처의 어둠 속에서는 스페인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배들은 여전히 수평선 위에서 빛을 발했고, 여전히 바람 한 점 없었다. 뉴욕은 아침이겠지. 그녀는 클라크가 맨해튼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화기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달에 일어난 일이었다.
-본문 5장 중
사라진 것들의 목록:
바닥에서 초록색 불빛이 올라오는 수영장의 염소 처리된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일. 야간 조명등 아래에서 하는 야구 경기. 여름밤 나방이 몰려들던 현관 등.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며 도시 아래를 달리던 지하철. 도시. 영화. 다만 아주 드물게, 발전기를 돌리느라 대사가 절반 이상 안 들리는 영화를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연료가 완전히 소진되기 전까지였다. 자동차 연료는 이삼 년 지나면 오래되어 못 쓰게 되었고, 비행기 연료는 좀 더 오래가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다.
콘서트 무대를 찍기 위해 사람들이 머리 위로 휴대전화를 들어올릴 때 어스름 속에 빛을 내뿜던 액정화면. 다채로운 할로겐 조명이 밝혀주던 화려한 무대, 전자음악, 펑크록, 전기 기타.
의약품. 손을 살짝 긁히거나 저녁을 차리려고 야채를 썰다가 손가락을 살짝 베이거나 개한테 물렸을 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
비행. 하늘에서 여객기 창문을 통해 반짝이는 불빛이 수놓인 도시들을 내려다보는 일. 10킬로미터 상공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그 시각 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일. 비행기. 좌석 테이블을 접어서 잠가달라는 요청. 아니, 사실 비행기는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활주로와 격납고에, 잠든 채로. 날개에는 눈이 쌓여갔다. 겨울에 비행기는 식품저장고로 안성맞춤이었다. 여름이면 과수원 근처에 있는 비행기는 더위에 말라버린 과일을 담은 쟁반들로 가득 찼다. 10대들은 그 안에 숨어들어가 섹스를 했다. 녹이 꽃처럼 활짝 피고 줄줄 흘러내렸다.
국가. 국경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방서와 경찰. 도로 보수 작업과 쓰레기 수거 작업. 케네디 우주센터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반덴버그 공군기지, 플레세츠크 우주기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어 솟아오르던 우주선. 그 우주선이 대기층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던 불꽃.
인터넷. 소셜 미디어. 화면을 스크롤하며 지루하고 장황한 꿈 이야기와 불안한 희망과 음식 사진과 자살 예고와 자기 자랑과 하트 아이콘으로 된 연애 상태 업데이트와 곧 보자는 말과 각종 청원과 불평과 욕망과 할로윈에 곰이나 피망 모양의 옷을 입힌 아기들 사진을 보는 일. 다른 사람의 삶을 읽고 댓글을 다는 일. 그럼으로써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던 일. 아바타.
-본문 6장 중
문명의 종말은 거의 모든 것과 거의 모든 사람을 앗아갔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아직 남아 있다. 바뀐 세상의 황혼녘 풍경, 물가의 세인트데버러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상연되고 있는 〈한여름 밤의 꿈〉, 8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미시간 호. 요정 여왕 티타니아로 분한 커스틴은 짧게 친 머리에 꽃으로 만든 왕관을 썼다. 광대뼈에 난 들쭉날쭉한 모양의 흉터는 촛불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관객들은 말이 없고, 사이드는 커스틴이 이스트조던이라는 마을 근처의 어느 집 벽장에서 찾아낸 죽은 남자의 턱시도를 입고 그녀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멈춰라, 이 뻔뻔하고 난잡한 여자야. 내가 남편이거늘.”
“그렇다면 난 부인이거늘.” 셰익스?
“얼마 전에 만났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2주 전 토론토에서요.”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그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충격이죠, 정말……. 우린 열여덟 살 때부터 친구였어요. 나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요.”
“어쩌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실은, 음…… 불쾌하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실은 이런 게 아서가 원하던 죽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무대에서 죽었거든요. 〈리어 왕〉 4막 중간에, 급성 심장마비로요.”
“연기하다가 쓰러졌다고요?”
“네. 관객 중에 의사가 두 명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고 급히 무대로 뛰어 올라가서 아서를 구하려고 애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네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이 선언되었답니다.”
이렇게 끝이 날 수도 있구나. 통화가 끝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시시한 결말이라니. 그러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한때 함께 늙어갈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머나먼 타국에서 전화 한 통으로 알게 될 수도 있는 거였다.
근처의 어둠 속에서는 스페인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배들은 여전히 수평선 위에서 빛을 발했고, 여전히 바람 한 점 없었다. 뉴욕은 아침이겠지. 그녀는 클라크가 맨해튼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화기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달에 일어난 일이었다.
-본문 5장 중
사라진 것들의 목록:
바닥에서 초록색 불빛이 올라오는 수영장의 염소 처리된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일. 야간 조명등 아래에서 하는 야구 경기. 여름밤 나방이 몰려들던 현관 등.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며 도시 아래를 달리던 지하철. 도시. 영화. 다만 아주 드물게, 발전기를 돌리느라 대사가 절반 이상 안 들리는 영화를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연료가 완전히 소진되기 전까지였다. 자동차 연료는 이삼 년 지나면 오래되어 못 쓰게 되었고, 비행기 연료는 좀 더 오래가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다.
콘서트 무대를 찍기 위해 사람들이 머리 위로 휴대전화를 들어올릴 때 어스름 속에 빛을 내뿜던 액정화면. 다채로운 할로겐 조명이 밝혀주던 화려한 무대, 전자음악, 펑크록, 전기 기타.
의약품. 손을 살짝 긁히거나 저녁을 차리려고 야채를 썰다가 손가락을 살짝 베이거나 개한테 물렸을 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
비행. 하늘에서 여객기 창문을 통해 반짝이는 불빛이 수놓인 도시들을 내려다보는 일. 10킬로미터 상공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그 시각 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일. 비행기. 좌석 테이블을 접어서 잠가달라는 요청. 아니, 사실 비행기는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활주로와 격납고에, 잠든 채로. 날개에는 눈이 쌓여갔다. 겨울에 비행기는 식품저장고로 안성맞춤이었다. 여름이면 과수원 근처에 있는 비행기는 더위에 말라버린 과일을 담은 쟁반들로 가득 찼다. 10대들은 그 안에 숨어들어가 섹스를 했다. 녹이 꽃처럼 활짝 피고 줄줄 흘러내렸다.
국가. 국경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방서와 경찰. 도로 보수 작업과 쓰레기 수거 작업. 케네디 우주센터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반덴버그 공군기지, 플레세츠크 우주기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어 솟아오르던 우주선. 그 우주선이 대기층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던 불꽃.
인터넷. 소셜 미디어. 화면을 스크롤하며 지루하고 장황한 꿈 이야기와 불안한 희망과 음식 사진과 자살 예고와 자기 자랑과 하트 아이콘으로 된 연애 상태 업데이트와 곧 보자는 말과 각종 청원과 불평과 욕망과 할로윈에 곰이나 피망 모양의 옷을 입힌 아기들 사진을 보는 일. 다른 사람의 삶을 읽고 댓글을 다는 일. 그럼으로써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던 일. 아바타.
-본문 6장 중
문명의 종말은 거의 모든 것과 거의 모든 사람을 앗아갔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아직 남아 있다. 바뀐 세상의 황혼녘 풍경, 물가의 세인트데버러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상연되고 있는 〈한여름 밤의 꿈〉, 8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미시간 호. 요정 여왕 티타니아로 분한 커스틴은 짧게 친 머리에 꽃으로 만든 왕관을 썼다. 광대뼈에 난 들쭉날쭉한 모양의 흉터는 촛불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관객들은 말이 없고, 사이드는 커스틴이 이스트조던이라는 마을 근처의 어느 집 벽장에서 찾아낸 죽은 남자의 턱시도를 입고 그녀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멈춰라, 이 뻔뻔하고 난잡한 여자야. 내가 남편이거늘.”
“그렇다면 난 부인이거늘.” 셰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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