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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매일 한두 개의 긴 글을 쓰고 나누는 사람이 있다. 쓰...

  • 정지우 지음
  • 웨일북
  • 2019년 08월 14일
  • ISBN 9791188248957
  • 320
  • 134 * 205 * 26 mm /39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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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매일 한두 개의 긴 글을 쓰고 나누는 사람이 있다.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글을 쓰는 사람. 정성스레 살고 정성스레 관계하는 사람. 작가 정지우는 감히 이 삶이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두가 정신없이 살아갈 때, 그는 섬세한 시선으로 일상을 촘촘하게 걸러내고, 흘러가는 생을 핵심적으로 살아내려 노력한다. 냉소하기는 쉽지만 따뜻하기는 어려운 이 시대에야말로 그의 생각과 생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책 없이 따뜻하지 않은, 지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삶의 온도를 유지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작가 소개

오래 전부터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글을 썼다. 어느 날부터는, 혼자서만 쓰지 않고 세상에 글을 내놓기도 했다. 십여 년간 서울살이를 하다가, 바다가 있는 고향에 머물고 있다. 소설을 쓰다가, 인문학 책을 썼고, 근래에는 조금 더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청춘인문학》,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 등이 있다.

목차

저자의 말
쓰며 살아갈 것이다.
거기에 삶도, 행복도 있으므로.

1부
오늘의 괜찮음을 확인하는 것

아케디아, 지금 여기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병
거대함의 감각을 일깨우기
삶의 핵심을 겨냥할 수 있도록
행복은 발굴해야 하는 것
시간이 삶을 쓸어간다
시간을 다루는 기술
그 오후보다 더 나은 순간을 알지 못한다
오늘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된다
‘성실한 사람’이라는 말
조금은 대충 살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벌이고, 수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방을 치우며 한 시절을 보낸다
감정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
바라는 건 적절한 기분을 유지하며 사는 것
중도의 모범적인 인물
나이 든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화해가 아닐까

2부
삶이 이미 쓰인 이야기라면

우리는 작가보다는 편집자일지도
디테일에 대한 태도
삶의 매 국면을 사랑하는 일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
행복은 말이 없고 고통은 말이 많다
늘 행복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완벽할 도리가 없음을 받아들일 것
타인의 불행을 자기위안의 재료로 삼지 않는다
무엇에 가장 아픈 사람인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견딜 줄 알게 된다는 것
고체화되기를 경계하며 액체화되기를 게을리하지 않기
삶에는 거짓이 빠질 수 없다
관념과 싸우는 기술
오늘의 문제는 오늘의 문제로
함부로 합리화하지 않는다
삶이 호의로 가득 차는 일
내가 선택하지 못한 삶의 아름다움

3부
우리는 각자 알맞은 자리에 서서

마음이라는 건 서로 비슷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을 잘 본다는 것
의존적인 사람
묵묵히 단단한 사람
고유한 순간들을 가진 사람
삶의 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타인의 평가는 신뢰하지 않는다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셔터를 내려야 한다
인생의 팁, 나에게 관심 없는 타인
타인들 속에서 나의 깊이에 몰두하는 일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잖아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할 때
세상의 소문
지나가는 인연을 지나가는 대로 둘 것
타인의 욕망을 이용하지 않기

4부
정성스럽게 사랑하겠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면 먼저 나를 주어야 한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 온전히 일관되게 말하기
사랑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사랑을
시간을 쓴 것만이 사랑으로 남는다
부단히도 말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사랑
어떤 사람이 비밀스러운 존재가 되는 순간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일
사랑이 대상에서 삶으로 옮겨갈 때
자신을 지킬 때에만 가능해지는 사랑
나의 기쁨은 당신의 기쁨에 의지한다
생각은 가장 나중에 와서 우리를 사로잡는다
“왜 싸움을 이기려고 해?”
결혼을 하면 좋은 점 세 가지
마술처럼 나를 보호해줄 ‘곁’이 나타나는 세계
‘함께’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술
현재를 위해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5부
나라는 고유명사로서의 삶

과거로부터 자신의 맥락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삶을 견디게 했던 건 내밀함의 시간
인간의 왜소함을 기억하는 일
결국 삶의 속도는 비슷해질 것이므로
지난 실패에 유감이 없다
청춘에 이미 많은 것이 정해진다는 진실
매 시절,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허공의 의지가 삶의 형태를 만들어갈 때
일관됨의 위안
섬세한 사람은 실제로 더 오래, 더 많은 삶을 산다
누군가를 위함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경험
무거움과 가벼움, 명료한 반복을 위하여
무엇에 자부심을 가지는가
갈수록 ‘무엇이 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다
내 삶이 얼마나 괜찮은지를 증언하는 사람이고 싶다

책 속에서

거대함으로부터 너무 이탈하여 더 이상 거대함을 모르게 되어버린다면, 그 삶은 여러모로 답답하고 초라한 게 되지 않을까. 삶이라는 게 매일같이 전전긍긍하는 ‘생활’뿐이라면, 겨우 반복하듯 쌓고 해소하며 살아가는 게 고작이라면 그 삶이 단순히 소소하다기보다는 왜소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거대한 것과의 연결점을 잃지 않는 건 중요하다. 그게 세계의 지성이든, 오랜 문명의 역사든, 우주의 신비로움이든, 세상의 드넓음이든, 기억의 광대함이든, 신의 사랑이든 그 거대함의 감각이 너무 멀리 달아나지 않도록 마음을 ... 거대함으로부터 너무 이탈하여 더 이상 거대함을 모르게 되어버린다면, 그 삶은 여러모로 답답하고 초라한 게 되지 않을까. 삶이라는 게 매일같이 전전긍긍하는 ‘생활’뿐이라면, 겨우 반복하듯 쌓고 해소하며 살아가는 게 고작이라면 그 삶이 단순히 소소하다기보다는 왜소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거대한 것과의 연결점을 잃지 않는 건 중요하다. 그게 세계의 지성이든, 오랜 문명의 역사든, 우주의 신비로움이든, 세상의 드넓음이든, 기억의 광대함이든, 신의 사랑이든 그 거대함의 감각이 너무 멀리 달아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작은 일상이 부드러워질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러한 거대함과 연결되어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작은 것일수록 거대한 것과 만난다. 작은 기쁨일수록 거대한 것에 뿌리내리고 있다. 작은 마음들이 알고 보면 거대한 마음으로부터 온다.
- <거대함의 감각을 일깨우기> 중에서

내게 주어지는 ‘날것’ 같은 시간을 통제하고 자아내며 빚어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누적된다는 건 확실히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준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허공에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닌, 진짜 내면에 가까운 것이다.
- <시간을 다루는 기술> 중에서

존재의 충실함은 오직 깨어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자인지를 늘 인식하는 사람만이 깨어 있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공허한 이름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고 있는 이들은 그저 ‘이름’ 혹은 ‘주어’에 복무하는 하나의 텅 빈 기계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것들로 늘 오늘 하루가 새롭게 재편되며, 그로 인해 자신이 정의되고, 인간이란 오직 그로써만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지평에 있다.
매일 내가 무엇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마음에 따라 행하며, 그로써 살아 있는지를 알고자 애쓴다. 내가 서 있는 지평이라는 것이 ‘자아’라는 공고한 어떤 실체가 아니라, 자아 자체가 때론 무용해지기까지 하는 어떤 실천적 상태라는 걸 기억하고자 한다. 오늘 쓰고, 오늘 사랑하고, 오늘 웃고, 오늘 꿈꾸고, 오늘 움직이고자 한다. 삶이란, 나 자신이란 오직 그 가운데만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 <오늘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된다> 중에서

어쩌면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자신이 굉장히 ‘잘났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 대한, 그 순순한 노력에 대한 칭찬은 아닐까. 일이든, 관계든, 사랑이든 늘 우리가 바라는 것은 내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보다 내가 정말로 ‘수고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우리 삶의 절망과 슬픔은 그런 노력들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내버려지는 때 도래하는 게 아닐까.
-<‘성실한 사람’이라는 말> 중에서

감정에 따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에 대한 부당한 질투와 시기, 이유 없는 증오와 혐오, 정당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감정을 스스로 너무 신뢰해선 곤란하다.
감정은 아주 즉각적이고, 강렬하며, 무엇보다도 ‘생생한 현실’이기에 우리는 일단 그것을 ‘진실’로 믿고 본다. 내가 이렇게 불쾌한데, 불편한데, 괴로운데 거기에 정당한 이유가 없을 리 없다. 그래서 일단은 자기 자신보다는 외부에서 이유를 찾는다. (…)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많은 경우 감정은 너무 신뢰해선 안 되었다. 오히려 적절히 무시할 필요가 있었다. 감정에 따라 판단하고 생각하고 나아가 행동까지 해서는 후회할 일이 잦았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았을 때 그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냥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을 버티고 그 순간을 지나 보낼 필요가 있었다.
감정은 때때로 우리의 잘못된 현실에 대한 대체 불가능한 증거이자 힌트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몇 번의 적중을 지나치게 믿고 기대하여 모든 감정을 신뢰하는 습관은 반대로 우리 삶을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온당한 시야를 가려버린다.
- <감정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에서

불행은 어떤 측면의 통찰력을 준다. 허무, 불안, 슬픔을 통해 삶의 본질을 엿보게 하고, 인생의 남다른 측면을 드러나게 한다. 하지만 불행은 그 통찰력만큼 삶을 앗아간다. 통찰력에 몰두하는 만큼 삶은 뒤로 물러난다. 그런데 내가 배운 지혜랄 게 있다면, 가장 몰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통찰력보다는 삶이라는 점이다. 삶을 갉아먹는 통찰력이라면 굳이 가지지 않는 것이 낫다. 통찰력보다는 삶의 우월성을 지켜내는 게 좋다.
-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 중에서

언어가 가장 절실한 순간은 우리에게 도래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이다. 나의 불편함, 불행감, 세상과의 불일치감이 극심해질 때, 우리는 그것들을 설명해줄 언어를 간절히 원한다. 그 언어는 철학의 언어이기도 하고, 종교의 언어이기도 하며, 그 밖의 잠언, 속담, 문학, 심리학의 언어로 다가오기도 한다. 언어는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할 수 없을 때, 가만히 충족감을 누릴 수 없을 때, 지금 여기에 전적으로 속할 수 없을 때 긴급 구조처럼 요청된다. 그렇기에 불행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한다.
- <행복은 말이 없고 고통은 많다> 중에서

행복은 내부로부터 나오는 힘이고, 그렇기에 외부의 비교로부터 오는 불행과는 정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이런 종류의 힘은 그것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도, 인정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외부로부터 불행감이나 행복감을 공급받고, 그로부터만 정체성을 얻고, 그러한 규정 안에서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부류의 사람에게는 내부로부터 무언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허상, 허깨비, 어떤 착각, 공허한 정신 승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삶의 모든 요소를 내부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많은 부분, 어쩌면 삶의 절반 이상은 내부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외부적인 것(물질, 환경, 조건)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에 삶은 내부성의 힘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느 정도는 외부적인 조건을 바꾸거나 개선하되, 그 이상으로 내부적인 어떤 힘과 태도를 끈질기게 지켜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 <타인의 불행을 자기 위안의 재료로 삼지 않는다> 중에서
아픔이 주는 것이 있다. 단순히 힘든 시절을 딛고 일어나 성공할 날이 올 거라든지, 아프면 성숙한다든지, 아픔을 통한 당위론적인 성장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에는 배경이, 성숙에는 교양이, 성장에는 사다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보다 아픔은 타자를 준다. 나를 넘어 타자를 알게 하고, 그로써 나를 강하게 한다. 강하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나는 자기방어에만 함몰된 왜소한 인간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더 기꺼이 공감할 수 있고, 더 온전히 이해하며, 더 넓은 것에 관해 말할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나약함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다. 그 자유의 땅이 바로 타자이다. 타자가 내가 딛고 설 수 있는 세계이다.
아픔이 없는 삶이야말로 죽어버린 삶이다. 내가 무엇에 아플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한다. 내가 여전히 무엇에 가장 아픈 사람인지를 고민해본다. 그 아픔이 이 시절이고, 지금의 나이며, 내가 나아갈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픈 것들을 배제하고, 아픈 것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기보다는 아픈 것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픈 것에 지금 이 삶의 핵심이 있다.
- <무엇에 가장 아픈 사람인가> 중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 사회 속의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거짓을 견디게 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은 우리 사회 전체, 우리 문명 전체가 어떤 거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도대체 이 사회 전체는 무엇을 향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다지도 열심히 굴러가며 나아가고 있는 걸까?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것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나아간다는 명분을 지니고는 있지만, 갈수록 복잡해지기만 하는 이 문명의 모든 것은 정말로 그 ‘행복’이라는 과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저 끊임없이 굴러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단지 멈출 수 없어서, 그랬다가는 거짓으로 지어진 문명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척’ 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삶에는 거짓이 빠질 수 없다> 중에서

많은 경우 인간의 불행은 관념의 비대화와 관련되어 있다. 니체가 유고에 적은 바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뿔’을 발달시키듯이 관념을 발달시켰다. 즉, 일종의 생존 수단이자 공격과 방어의 방법으로 관념을 만들어냈고, 관념을 통해 자기에게 들어오는 온갖 문제들을 부풀리며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념은 사회를 만들고 문명을 건설하게 하고 인간을 단단하게 하는 모든 걸 주었지만, 반대로 인간 고유의 모든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불행은 과도한 의미 부여에서 시작된다. 불행한 사람은 타인의 말 한 마디, 제스처 하나, 자기에게 도래한 약간의 문제 상황, 사소한 실패의 기억 같은 것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있는 게 ‘말 한 마디’라면, 거대한 관념 속에서 그것은 온갖 악의, 저주, 나를 향한 적의, 그를 통한 두려움과 불안, 나의 현재와 미래까지 망쳐놓는 무엇이 된다. 비슷한 식으로, 타인의 시선을 마음대로 상상하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도 관념의 비대화와 관계되어 있다.
- <관념과 싸우는 기술> 중에서

사람이 참 나약한 것이 너무 쉽게 ‘오늘’의 문제를 ‘삶 전체’의 문제로 돌리곤 한다는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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